영화 시작부터 강렬한 음악과 사도세자의 감정으로 긴장감이 확 조성된다.
그러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게 되는 첫째날부터 차근차근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
그 날 그 날 일이 벌어지는 과정, 그리고 과거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 관계의 여러 모습들이 조금씩 나오는데,
인물의 현재 얼굴의 각도와 과거 얼굴의 각도가 맞게 디졸드되며 자연스레 과거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열등감과 강박증이 내재된 영조는 적통자인 사도세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총명한 아들의 모습에 굉장히 기뻐했다. 그런데 조금씩 사도세자는 공부보다는 자유로움을 원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이에 영조는 대단히 실망한다. 어떻게든 완벽한 왕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과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아들이 아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기질적인 문제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양극성 장애), 극에서는 아버지 영조가 어떤 식으로 그 기질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부각시키는지 보여준다.
왕재가 아니었던 세자, 그리고 적통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완벽주의자 왕은 결국 세손을 포기할 수 없어 비극을 선택했다.

사도역을 맡은 유아인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싶던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원망을 돌이킬 수 없던 순간까지 감정선의 세밀한 표현과 스펙트럼이 대단했다. 무엇보다도 뒤주 속 연기가 굉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소변을 부채에 받아서라도 갈증을 해소하려던 중 그 부채에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보고 아들 이산의 탄생을 기뻐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오열하던 장면이 진한 잔상을 남겼다.
영조역의 송강호 연기는 새삼스럽지만 너무나도 세세한 지점들까지 의도가 깃든 듯해서 놀라웠다. 그저 아들을 죽인 광인 같았던 왕의 모습으로 남았던 영조가 아닌,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되었다. 그가 왕이 된 배경,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졌을 열등감 내지는 자격지심, 컴플렉스, 그리고 신하들 사이의 권력관계 속에서 아들을 통해 자신의 약점까지 채우고 싶었던 엇나간 욕구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에 따라 그 감정이 사도세자에게 가해진 압박이 어떨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린 정조역을 맡은 아역의 연기도 꽤나 좋아서 여러 장면들을 살린 것 같다. 삼대가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때(아들을 죽이려는 아버지, 아버지에 대항하는 아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 애원하는 손자), 정조의 비극적 가족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도세자가 부채를 보고 슬피 우는 씬, 칼을 들고 분노에 차 아버지를 찾아간 사도세자가 아비의 마음을 보았다는 아들 이산의 말을 듣고 마음이 사그라든 씬, 영조가 아들 이선이 죽은 뒤 세자의 이름을 생각할 사 슬퍼할 도로 지으며 명패를 쓰고 바라보는 씬으로 꼽는다.
영화의 후반부 정조 즉위 이후 이야기는 사족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혜경궁 홍씨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고, 정조가 춤을 추며 아버지를 회상할 때의 교차씬이 상투적인 연출이라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감정씬이 중복적으로 소비되는 것도 아까운 느낌이었고, 그때 정조가 회상 불가능한 사도세자의 모습들(그만 아는 고독한 시간)이 나오기도 해서 정조의 감정과 연결이 되지 않아 몰입이 방해되기도 했다.
예상 가능했던 평범한 엔딩씬으론 정조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는 말을 남기는 것이 있었지만 진부했을 듯하고,
개인적으론 영조가 사도란 이름을 지으며 아들을 생각하는 장면으로 끝마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장면이 선사하는 여운이 짙었는데 곧 이어지는 장면들로 인해 끊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 외 미장센이 특별히 돋보인 장면들로는 눈 내리는 날 근정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는 씬이라든가 용포가 떨어지는 씬이라든가 주로 한옥의 풍경 등 극의 시대를 잘 살린 장면들이 있었다.
음악도 과하거나 덜하지 않고 적절했다. 감정선과 잘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음향의 멋스러움이 와닿는 순간들도 특별히 있었다.

전반적으로 비극의 미를 잘 살린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진행과 함께 러닝타임에 따라 느낄 수 있었던 여러 감정들이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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